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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주변의 익숙한 이야기로 시작을 하겠습니다.
용두사미
스터디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매주 한 번 씩 만나, 두 사람이 각자 한 챕터 씩, 총 두 챕터 발제를 하는 식입니다. 스터디원은 총 12명이고, 책은 총 24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니, 자신은 전체 스터디 기간 중 두 챕터를 발제하면 됩니다. 뭐 별로 부담될 것 같지도 않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의지 충만에 각오 단단으로 내 발제 순서도 아니지만(원래 스터디는 모든 사람이 해당 부분을 읽어오고, 발제자는 좀 더 열심히 공부해 온다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1, 2 장을 열심히 읽어 갔습니다. 아, 알찬 스터디가 되겠군 하는 서광이 비칩니다. 어, 그런데 한 주 한 주 지나가면서 스터디 진도 따라가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그 주에 프로젝트 마감 같은 게 걸리면 도무지 책 읽을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발제 순서도 아니니까 별 부담도 없고요. 전체 12명 중에 책을 읽어 오는 사람 숫자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합니다. 가끔 발제하기로 한 사람이 책을 못읽어 오기도 하고, 그런 이유로 아예 잠수타는 경우도 생기고요.
스터디에 대한 참여도나 열정 모두 흐지부지 되기 시작하면서 스터디는 그냥 물건너 가버립니다. "정말 바빠서 스터디 못하겠네요"하는 메세지가 스터디 게시판에 올라오고, 스터디원은 한 명 더 줄어들고 발제가 되돌아오는 주기는 더 짧아지고, 고로 남은 스터디원들의 부담은 더 커집니다. 악순환의 시작이죠.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개인의 태도나 열정, 정신 상태의 문제로 돌려버리면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방도를 찾아보도록 하죠.
스터디냐, 공부냐?
영어로 study라는 단어의 번역어는 '공부하다'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우리 일상언어에서 "스터디하다"와 "공부하다"는 좀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스터디는 통상 여럿이 같이 하는 것이고, 공부는 혼자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에 스터디를 하려고 집에서 책 보면서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할 수 있죠. 스터디라는 자리는 각자 공부해 온 것을 공유하고 남에게 가르쳐주고 배우고, 토론하는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따로 공부를 하지는 않습니다. 공부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되니까요.
어떻게 공부하는지는 알아서 하고, 일단 각자 공부해 오세요. 그래야 스터디가 가능합니다. 이게 전형적 스터디의 전제입니다. 그런데 꼭 이런 고정관념에 얽매일 필요가 있을까요? 같이 모여서 공부 좀 하면 어때서? 꼭 스터디 자리에 말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퍼지고 있어야만 하는가? 꼭 공부를 온전히 개인의 책임으로 넘겨버려야만 하는가? 다들 준비를 해와야지만 알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같이 모여서 공부할 수도 있다는 발상을 잘 못합니다. 우리는 여럿이 모여서 조용한 걸 못견뎌 합니다.
바쁜 사람들을 위한 공부하는 스터디
앞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한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스터디를 하면서 얻은 깨달음 몇가지를 한 자리에 모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설명드리도록 하죠.
스터디에 9명이 모였습니다. 지난 스터디 때, 남아있는 챕터 중 3개를 골라 두었습니다(이 스터디는 챕터를 꼭 순차적으로 고르지는 않습니다). 지난 번에 뽑아둔 3개 챕터 중에서, 각자 자기가 읽고 싶은 챕터를 고릅니다. 3:3:3으로 나뉘었다고 치죠.
삼색볼펜으로 책 읽기
20분간 각자 자기 챕터를 읽습니다. 단, 삼색볼펜법을 사용합니다.
(이미지 출처: YES24)
혹시나 삼색볼펜법을 모르는 분을 위해 간략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최소 빨강, 파랑, 초록 세 가지 색깔이 있는 볼펜을 하나 들고 책을 읽습니다. 내가 읽는 부분에서 정말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에 빨간 색으로 밑줄을 긋습니다. 단, 빨간색은 한 페이지에 하나 이상 치지 않습니다(줄 칠 곳 없으면 건너 뛰어도 됩니다). 핵심은 아니지만 나름 중요하다고 생각들면 파란색 밑줄을 긋습니다. 중요하고 아니고를 떠나서 흥미롭다,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에는 초록색을 긋습니다. 삼색볼펜법의 설명을 들으면 허접해 보입니다만, 절대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매우 강력한 공부법이자 독서법입니다.
이렇게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순서대로 읽으면서 빨, 파, 녹을 적절히 선택해 가면서 밑줄 칩니다. 기본적으로 전체를 한 번 읽는 걸 목표로 합니다.
우선 빨간색을 다 치겠다는 마음으로 후르륵 속도를 높혀 읽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파란색만 치겠다는 생각으로 재독합니다. 마지막으로 삼독하면서 초록색을 씁니다. 전체를 세 번 읽는 걸 목표로 합니다.
사람에 따라 1번으로 읽어서 더 빠른 사람이 있고, 오히려 2번으로 읽어서 더 빠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선택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어떤 방법을 쓰든지 읽는 줄 밑에 볼펜을 대고(볼펜촉은 집어넣은 상태로) 눈을 따라가면서(사실은 볼펜 끝을 눈이 따라가면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속독법을 따로 훈련받지 않아도 이 방법만 사용하면 독서속도와 집중도가 상당히 높아집니다. 그 외의 효과적인 속독법은 다음에 따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타이머로 시간 재기
(이미지 출처: 위키피디어)
읽는 동안에는 타이머(모래시계를 포함 10여종이 넘는 타이머를 써봤습니다만 가장 추천하는 타이머는 마루맨 멀티타이머)로 시간을 잽니다. 가능하다면, 시작 시간을 20분에 맞춰놓고 카운트 다운을 시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시간을 알 수 있게 하면 좋은데(만약 프로젝터가 있다면 화면에 소프트웨어 타이머를 띄워놓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시간관리를 하는 분이 10분 남았다, 5분 남았다 등 몇 몇 시점에서 남은 시간을 알려줘도 좋습니다.
20분이 지났는데 아직 완독을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시간 연장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도 규칙이 있습니다. 5분이나 10분, 혹은 15분 중 하나의 단위로 연장합니다. 그 이상의 단위는 불가능합니다. 시간 연장시 마찬가지로 타이머를 셋팅합니다. 시간 연장을 한 번 했는데도 다시 연장할 필요가 생기면 전원의 동의를 얻어 또 연장을 하되 5, 10, 15분 중 하나로만 연장합니다. 이렇게 연장을 해나가더라도 전체 시간이 1시간 이내가 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목표는 모든 사람이 모든 글을 빠짐없이 읽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대부분의 글을 읽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이렇게 시간 제한을 두고, 또 삼색볼펜법과 볼펜으로 따라읽기를 함께 하면 평소 읽는 속도의 1.5~2배 정도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집중은 더 잘됩니다.
그룹별 공유
다 읽었으면 각 그룹별(같은 챕터를 읽은 사람들끼리)로 모여 앉습니다. 한 사람이 진행자가 됩니다. 진행 방식은 다음 두가지가 있습니다. 맘에 드는 것을 고르세요.
진행자가 한 페이지씩 진행해 나가면서 사람들에게 빨간색으로 줄친 곳을 물어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빨간색으로 줄친 곳을 소리내어 읽습니다(다른 사람이 이미 읽었던 줄은 건너 뛰고). 진행자는 모두의 합집합을 구합니다(자기 책에 모두의 빨간색이 다 표시되도록 함). 이 때 여러 사람이 공감한 줄(많은 사람이 같은 부분에 빨간줄을 그었다든지)에 대해서는 특별히 표시를 해둡니다. 빨간색이 완료되면 그 페이지에 파란색이 있는지 확인하고 역시 같은 방법으로 진행하고, 그 다음엔 초록색을 확인합니다. 이제 다음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전체(해당 챕터)에 대해 빨간색만 확인합니다. 빨간색이 다 끝나고 나면, 그 때 처음으로 되돌아가서 파란색을 봅니다. 마지막으로 초록색을 봅니다. 아까 읽은 부분을 총 세번에 걸쳐 훑는 셈입니다. 다른 방식은 1번과 유사합니다.
여기에 총 20분이 소요됩니다. 이제까지 책읽기 20분 + 연장 한번 10분 + 그룹별 공유 20분 해서 총 50분이 지났다고 칩시다. 10분간 휴식을 합니다. 고도로 집중해서 시간을 쓰기 때문에 쉽게 피로해질 수 있습니다. 적절하게 휴식을 취하는 게 좋습니다.
전체 공유 및 마무리
이제 그룹을 해체하고 전원이 한자리에 모입니다. 둥그렇게 둘러 앉으면 좋습니다. 그룹별 진행자 세명이 돌아가며 발표를 합니다. 빨간색과 초록색 위주로 하되, 논쟁이 되었던 부분 등에 대해 추가 언급을 합니다. 예를 들어 발표자가 몇 페이지 몇 번 째 단락의 몇 번 째 문장에 빨간색을 쳤다고 말하고 소리내어 읽으면, 각자는 그 부분을 책으로 찾아보면서 따라갑니다 -- 그러면서 간접적으로 책을 읽게 되지요. 각 그룹별로 발표가 끝나면 질답이나 토론을 할 수 있습니다. 한 그룹당 15분씩 쓰고, 총 3개 그룹이므로 45분을 씁니다.
마지막으로 10분간 전체 정리 및 회고를 합니다. 각자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고, 뭐가 좋았고, 이런 교훈을 얻었고 등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다음 스터디 때 공부할 챕터를 3개 뽑습니다.
이렇게 하면 대략 2시간이 됩니다.
적용
저는 스터디원들이 바쁜 사람들일 때 이 방법을 많이 씁니다. 따로 시간 내어 책읽는 것이 부담되는 경우 스터디할 엄두를 못내는데, 이 방법을 쓰면 가능합니다. 아예 각자 책읽을 시간을 스터디 시간에 포함시켜버리는 셈이니까요. 애자일컨설팅 내부에서 이 방법을 사용해서 매주 진행하는 스터디가 하나 있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내용을 읽고, 정리할 수 있다는 면에서 매우 만족해 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워크샵에도 훌륭히 적용됩니다. 책에 따라 대략 12시간 정도를 쓰면 어지간한 책 한 권 뗄 수 있습니다. 설사 아무도 그 책을 미리 읽어오지 않아도 말이죠(물론 미리 준비해 오면 시간이 더 줄겠지만). 1박 2일이면 1일차에 8시간 쓰고, 2일차에 4시간 쓰는 식으로 합니다. 이걸 제대로 하려면 밤에 술먹고 늦게 자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참고로, 저는 Readership Training이라는 걸 하는데, 기본 원칙이 돌아올 때 정신과 몸이 모두 재충전 되는 겁니다)
주의할 점을 몇 가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스터디를 하는 동안 시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매 스터디에서 함께 공부한 부분 중에서 내가 직접 읽은 것과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의 비율이 큰 차이가 나지 않게 합니다. 1:1이나, 1:2 정도가 좋습니다.
제가 설명드린 예를 기초로 해서 몇 가지 변주를 시도해 보세요. 분명 효과를 보시리라 확신합니다.
--김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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